지진학

지진의 깊이-지하 10km의 흔들림, 얼마나 깊어야 위험할까?

아침양갱 2025. 7. 11. 23:29

지진의 깊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시작되는 재난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볼 때 우리는 무심코 숫자들을 받아들인다. 규모 6.0, 진앙은 어디인지, 그리고 종종 함께 언급되는 ‘지하 10km’라는 표현.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진의 규모에만 집중하지만, 실제로 피해를 결정짓는 데 있어 지진의 깊이는 규모만큼이나 중요하다.

얕은 깊이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표면까지 도달하는 에너지 손실이 적기 때문에 더 강하게 체감되며, 그로 인한 피해도 크다. 반면 깊은 곳에서 일어난 지진은 진동이 넓은 지역에 퍼질 수는 있지만 표면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하 10km, 이 숫자가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왜 이 깊이가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지진의 깊이가 가지는 과학적 의미와 피해 양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본다.

 

지진의 깊이란 무엇인가?

지진은 지구 내부의 판들이 충돌하거나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에너지 방출 현상이다. 이때 지진이 시작된 지점을 ‘진원(震源, focus)’이라 부르고, 이 진원이 위치한 지하 깊이를 지진의 깊이라고 한다.

지진의 깊이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나뉜다.

  • 천발지진 (0~70km)
  • 중발지진 (70~300km)
  • 심발지진 (300~700km)

이 중 천발지진은 지표면과 가까운 깊이에서 발생하며, 대부분의 대형 피해 지진은 여기에 속한다. 특히 지하 10~20km 내외는 에너지가 거의 손실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작은 규모라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얕을수록 위험하다 – 천발지진의 실체

우리는 종종 “규모 6.0인데 피해가 크다”거나, “규모 7.5인데도 조용히 지나갔다”는 뉴스를 본다. 이 차이의 핵심은 바로 ‘깊이’다. 얕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일수록 에너지 감쇠가 적고, 지표면에 큰 충격을 전달한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에서 이런 지진이 발생하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사례 1: 2016년 경주 지진 (진원 깊이 15km)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한 지진 중 하나인 경주 지진은 규모 5.8이었지만, 진원이 매우 얕아 전국에 진동이 전달되었고 많은 문화재와 건물이 손상되었다. 특히 경주는 내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진동이 감쇠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었다.

사례 2: 2010년 아이티 지진 (진원 깊이 13km)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은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직격했고, 건물 붕괴와 인프라 파괴로 인해 30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이 지진은 도시 인근의 얕은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깊을수록 피해는 줄어들지만 예외도 있다

심발지진은 지하 수백 km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지표면까지 에너지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진동이 넓게 퍼지면서도 감쇠되어 비교적 피해는 적다. 그러나 이들 지진은 느린 진동과 장시간 지속되는 흔들림으로 사람들에게 큰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사례: 2013년 오호츠크해 지진 (진원 깊이 611km)

일본 전역과 러시아까지 흔들림이 감지되었지만,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는 깊은 진원에서 발생한 지진의 대표적인 예다. 심발지진은 지진파가 굴절과 반사를 거치며 멀리까지 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규모 vs. 깊이 – 피해 양상의 이중 변수

지진의 피해는 단순히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규모 6.0의 지진도 얕은 곳에서 일어나면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고, 규모 7.5라도 깊은 곳에서 발생하면 흔들림만 감지될 수 있다. 이 두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지진의 위험성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비교 예시

  • 규모 6.0, 깊이 10km → 건물 붕괴, 인명 피해 발생 가능성 큼
  • 규모 7.5, 깊이 500km → 넓은 지역 진동 감지, 표면 피해는 경미

 

왜 천발지진이 더 많고 더 위험한가?

 

지구의 지각은 평균적으로 570km 두께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지질활동은 이 지각 내에서 일어난다. 단층 운동이나 판 경계 충돌이 주로 지표 가까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천발지진의 비율이 높다. 실제로 전 세계 지진의 약 8590%가 천발지진이다.

그리고 이 지진들이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발생할 경우, 단층의 위치나 인프라 상태, 내진설계 유무 등에 따라 피해 규모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벗어나 있지만, 활단층이 존재하며, 경주나 포항 지진처럼 얕은 진원에서 발생한 천발지진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특히 포항 지진은 진원 깊이 7km로 매우 얕았으며, 규모는 5.4에 불과했지만 다수의 주택과 학교 건물이 붕괴되고 수백 명이 다쳤다.

한국은 내진설계 도입 시점이 비교적 늦고, 기존 건축물 중 많은 수가 비내진 구조라는 점에서 얕은 지진에 더욱 취약하다. 천발지진은 피해가 구조물 붕괴로 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처럼 준비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위험성이 더욱 크다.

 

조기 경보는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은 지진파 중 빠르게 도달하는 P파를 먼저 감지해 경보를 발령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진원이 깊을수록 경보 시간이 길어지는 특성이 있다. 반대로, 천발지진은 경보 시간이 짧거나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 심발지진: 수십 초에서 1분 이상 경보 가능
  • 천발지진: 수 초 내 도달 → 경보 시간 부족

이로 인해 얕은 지진일수록 대피 시간이 짧아져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조기경보 시스템과 별개로, 상시 대피훈련, 내진 리모델링, 지역별 지진 위험 지도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깊이는 보이지 않지만 위험을 가늠하는 열쇠다

지하 10km라는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 깊이는 에너지의 감쇠 여부, 조기 경보의 가능성, 피해 지역의 범위와 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다. 특히 한국처럼 구조물의 내진 능력이 불균형하고 지진 대응 문화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천발지진에 대한 대비가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지진 대응은 ‘규모’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깊이’를 포함한 종합적 판단 체계로 진화해야 한다. 진앙의 깊이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강하게 흔들릴 것인지를 예측하는 열쇠이자, 미래의 재난을 막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지진의 그늘, 액상화 현상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지진 발생 시 지반이 진흙처럼 변하는 액상화 현상의 원리와 피해 사례, 그리고 이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