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지진을 견디는가?

아침양갱 2025. 7. 8. 11:45

지진과 건축

 

흔들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설계의 진화

 

도시가 발전하고 인구가 밀집될수록,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특히 지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재난으로, 수 초의 흔들림이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그 피해의 핵심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견디지 못한 ‘구조물’에 있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떻게 지진을 견뎌야 할까? 건축은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혹은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지진에 견디는 도시와 건축의 비밀, 즉 내진설계의 역사, 기술, 적용사례, 한계와 미래까지 함께 살펴본다.

 

내진설계의 개념과 진화

 

‘내진설계(耐震設計)’란, 건축물이나 인프라가 지진의 진동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구조적 저항력을 갖추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강한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의 주파수와 방향, 지속 시간 등을 고려해 진동에너지 자체를 흡수하거나 분산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고대 문명부터 현대까지

사실 내진 개념은 고대 문명에서도 존재했다. 일본 전통 건축인 ‘기둥-보 방식’(포스트 앤 빔)은 목재 구조로 지진의 흔들림을 유연하게 흡수했다. 또한 페루의 잉카 문명은 ‘맞춤형 돌쌓기’를 통해 지진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건축을 구현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내진설계는 20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과 1933년 미국 롱비치 지진 등 대형 참사를 겪으며, 각국은 내진기준을 법제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6년 이탈리아 지진 등은 건축기준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내진 기술의 원리 – 버티거나, 피하거나, 함께 흔들리거나

 

지진에 대응하는 건축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전략으로 나뉜다.

내진(Resistant)

  • 구조 자체를 튼튼하게 설계해 지진 하중에 직접 저항하는 방식
  • 철근콘크리트, 강재 프레임 구조가 대표적
  • 구조 계산을 통해 예상되는 최대 진도에 대비하도록 설계됨

면진(Base Isolation)

  • 건물과 지반 사이에 고무, 납, 철판 등으로 구성된 면진장치를 설치
  • 지진파가 건물로 직접 전달되지 않도록 ‘절연’하는 구조
  • 흔들림을 30~70% 이상 감소시킬 수 있음

제진(Damping)

  • 건물 내부에 댐퍼(damper) 장치를 설치해 진동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분산
  • 차량의 서스펜션과 유사한 원리로, ‘흔들림을 조절’하는 시스템
  • 고층 빌딩, 교량 등에 자주 사용됨

이 세 가지는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건물의 내진 능력을 극대화한다.

 

도시 설계와 인프라의 내진 전략

 

도시 차원의 내진은 단순히 건물 하나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도시 시스템이 흔들림 속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진구역별 ‘내진 등급’ 적용

일본, 미국, 뉴질랜드 등 지진 다발국은 국토를 진도 위험도에 따라 구역화하고, 내진등급을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진도 7 이상이 예상되는 지역에는 고강도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며, 병원, 학교, 정부청사 등은 ‘최상위 등급’을 적용받는다.

기반시설의 내진화

상수도관, 가스관, 전력망, 철도 등 주요 인프라도 지하매설 방식 변경, 면진 장치 삽입, 자동차단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지진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지하철 터널은 내진관절과 이중 차단 시스템을 적용하고, 교량과 고가도로에는 유연성 있는 이음 구조를 설계해 붕괴를 막는다.

공공 공간과 대피 인프라

도시는 흔들림 그 자체만이 아니라, 지진 이후의 혼란에 대비한 구조적 장치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초등학교 운동장, 공원 등이 지진 대피소로 지정되며, 내진 구조를 갖춘 다목적 건물은 ‘긴급 피난처’로 활용된다. 또한 지진 발생 시 혼잡을 줄이기 위해 대피 동선을 고려한 보행 네트워크 설계도 중요하다.

 

국가별 내진 설계 기준의 비교

 

일본 – ‘세계 최고 수준’의 내진 강국

  • 1981년 ‘신내진설계법’ 시행 이후 건축물의 내진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
  •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에는 ‘면진’ 및 ‘제진’ 기술이 대중화
  • 건축법상 모든 건물은 내진등급 확보가 의무

미국 – FEMA 및 IBC 기준 적용

  •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의 지침에 따라 건축물 내진 설계 수행
  • 고층 건물에는 제진장치 및 모션 센서 의무화

대한민국 – 2017년 이후 본격 강화

  • 경주(2016), 포항(2017) 지진 이후 내진 기준 대폭 강화
  • 2018년 이후 신축 건물은 일정 규모 이상 내진설계 의무화
  • 하지만 기존 건축물의 보강률은 아직 낮은 편

 

내진 기술의 한계와 오해

 

  1. “면진이면 무조건 안전하다?” → 절대 그렇지 않다. 면진은 일정 진도 이하에서 효과적이며, 장비 노후, 설치 미흡 시 오히려 구조 불안정 요소가 될 수 있다.
  2. “모든 건축물은 내진이 적용되어 있다?” → 아니다. 특히 1980년대 이전 건축물, 사적 시설, 소형 상가 등은 내진 기준 이전에 지어진 경우가 많아 여전히 취약하다.
  3. “고층 빌딩은 더 위험하다?” → 구조 설계에 따라 다르다. 사실 고층일수록 제진장치와 면진이 복합적으로 설계되어 내진 성능이 높은 경우가 많다.

 

미래의 도시와 지진 –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기후위기와 함께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잦아지면서, 지진에 강한 도시 설계는 ‘옵션’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미래의 도시는 단순히 지진을 견디는 수준을 넘어서, ‘빠르게 복구하고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 내진 시스템

  • 실시간 진동 감지 센서와 AI 기반 구조물 상태 모니터링
  • 지진 발생 시 자동 대피 경로 안내, 구조물 상태 경고 시스템

모듈형 건축과 재료 혁신

  • 탄소 섬유, 내진 콘크리트 등 신소재 개발
  • 지진 후 빠른 재조립이 가능한 ‘모듈형’ 도시 인프라 시스템

도시 계획과 방재 통합

  • 단순한 건축 기준 강화가 아닌, 도시계획 자체가 방재 설계 중심으로 전환
  • 예: 고층 밀집 지역의 거리 너비 확대, 도심 내 응급의료 인프라 분산 배치

 

흔들림은 피할 수 없지만, 무너짐은 피할 수 있다

 

지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은 기술과 정책의 몫이다. 건축과 도시는 더 이상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는 ‘방어막’이어야 한다. 내진설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단지 법적 기준을 넘는 것을 넘어, ‘생존의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각국의 실패와 교훈, 기술의 진화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판이다. 우리의 도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지진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본다 – 계측, 해석, 그리고 예측의 세계”를 주제로, 지진계, 인공위성, 센서 네트워크가 어떻게 지진을 분석하고, 미래 예측에 활용되는지 탐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