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

도시 지하철과 지진, 터널은 안전한가?

아침양갱 2025. 7. 15. 22:20

도시지하철과 지진

 

 

지하철이라는 현대 도시의 혈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일상은 지하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출근과 퇴근, 학생들의 등교와 시민들의 이동까지 하루 수백만 명이 지하 수십 미터 아래로 이동한다.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현대 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이며, 도시의 ‘혈관’에 해당하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묻지 않는다.
지하철이 지진에 안전한가? 지하 수십 미터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최근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강진 사례들을 살펴보면, 지하철과 같은 지하 구조물 역시 지진에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진이 건물과 도로뿐만 아니라, 지하 인프라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야 한다.

 

터널은 지진에 강한가, 약한가?

흔히들 “지하에 있으니 더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는다. 실제로 터널 구조물은 건물에 비해 구조적으로 지진에 덜 흔들리는 특성이 있다. 지표면 가까이 위치한 건물은 땅의 흔들림을 직접적으로 받지만, 지하에 있는 구조물은 상대적으로 진동이 감쇠되어 전달된다. 특히 대부분의 도시철도 터널은 원형 구조로 되어 있고, 흙에 밀착되어 매립되어 있어 외부 압력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일종의 계란 구조처럼, 일정 압력을 균등하게 분산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진성이 높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조건에서의 이야기다. 실제로는 지반의 종류, 지하수의 유동, 단층의 존재 여부, 구조물의 설계 방식 등에 따라 지하철은 매우 취약한 재난 공간이 될 수 있다.

 

실제 지하철 지진 피해 사례

● 일본 고베 대지진 (1995년)

고베 대지진은 지하철 구조물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한신 전철 및 고베 지하철 구간에서는 복수의 터널이 함몰되거나 벽체가 붕괴되었다. 특히 신카이치역과 나가타역 사이에서는 터널 천장이 내려앉으며 열차가 탈선했고, 일부 구간에서는 매몰된 채 구조에 수일이 걸렸다. 이 사고는 일본 전역의 지하철에 대해 대대적인 내진 보강 정책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08년)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건물은 물론 수십 개의 지하 구조물도 붕괴되었다. 중국은 지진 발생 직전까지 지하철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분류해왔으나, 이 지진 이후 해당 분류 체계를 완전히 수정했다. 지하에서의 붕괴는 구조 작업이 매우 어렵고 생존률이 낮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 멕시코시티 지진 (2017년)

도시철도는 유지됐지만, 지하 터널 일부가 균열되며 지반 침하 현상이 발생했고, 기차가 속도를 줄이고 일정 시간 운행이 중단되었다. 복구에는 수 주가 소요되었고, 시민들은 상당한 불편을 겪었다.

 

한국 지하철의 내진 설계 현실

한국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되어 있었기에, 내진 설계가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4호선까지는 1970~80년대 건설되어, 초기에는 지진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1999년 내진설계 기준이 개정되면서, 신축되는 지하철 구간에는 내진 요소가 일부 반영되었지만, 이미 운영 중인 구간은 여전히 취약한 구조로 남아 있다.

서울교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 지하철 전체 구간 중 내진 성능을 확보한 터널은 약 60%에 불과하며, 역사 구조물의 내진 보강률은 약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하철 내진 보강에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서울·부산 등 주요 도시 외 지방 도시 지하철은 여전히 내진 보강률이 낮은 수준이다. 특히 지하 30m 이하 심도 구간, 지반이 연약한 지역, 지하수 흐름이 많은 구간 등은 지진 발생 시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지진이 지하철에 미치는 실제 영향

지진이 지하철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단순히 열차의 흔들림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리스크가 존재한다.

  • 터널 벽체 균열 또는 함몰: 일정 진폭 이상의 지진 발생 시 콘크리트 라이닝(벽체)에 균열이 발생하며, 반복 진동에 의해 구조체가 붕괴할 수 있음.
  • 지반 침하 및 단층 파괴: 터널이 지나는 경로가 액상화 지반이거나 단층 인근일 경우, 구조물 자체가 휘거나 끊길 수 있음.
  • 선로 및 전력 시스템 손상: 전력 공급선과 제어 시스템, 통신 케이블 등이 파손되어 열차 운행이 불가능해짐.
  • 배수 시스템 장애: 지진으로 인해 터널 내 물이 역류하거나 차오를 수 있으며, 특히 우천 시 위험성이 증가.
  • 역사 내부 붕괴 또는 정전: 지하 역사 내 천장 마감재 또는 환기구가 떨어질 수 있고, 정전 발생 시 조명 및 공조 기능 상실.

이처럼 지하철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미노처럼 전체 시스템이 멈출 수 있다.

 

시민은 지하철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하철 이용 중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반 시민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은 제한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터널 주행 중일 때

  • 급히 열차에서 내리지 말 것.
    대부분 열차는 운행 중 자동으로 감속 또는 정지되며, 터널 내는 조명이 꺼질 수 있다.
    통신이 두절되더라도 차량 내 대피 방송을 따르고 좌석에 착석해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 비상문을 열고 탈출하지 말 것.
    열차가 정지했더라도, 주변이 고압 전력선일 수 있고, 차 외부는 위험한 환경이다.
    구조대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역 내부에 있을 때

  • 천장 마감재나 광고물 아래에 서지 말 것.
    역사 내 벽면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출입구와 천장 근처는 위험하다.
    벽에 등을 대고, 소지품이나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한 채 낮은 자세를 취한다.
  • 계단을 급히 뛰지 말 것.
    지진 중에는 엘리베이터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되며, 계단은 혼잡하므로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 지하철 구조는 구조대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와 연락이 가능한 최소한의 수단(보조배터리, 손전등, 호루라기 등)을 항상 휴대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 지진 대응, 무엇이 더 필요할까?

지하철은 단순히 열차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수백 개의 통신 노드, 송전 케이블, 제어실, 비상전원, 그리고 수천 개의 배수펌프, 센서, 방재설비로 이루어진 정교한 시스템이다. 이 거대한 시스템은 초 단위의 협업과 정보 공유가 없으면 즉시 정지 상태로 빠져든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래와 같다:

● 정부 및 지자체

  • 지하철 내진 보강 사업의 속도 가속화
    연차 계획이 아닌, 재해 취약 구간부터 선제적 보강이 필요하다.
  • 지진 대응 시나리오 기반의 모의훈련 강화
    실제 상황을 가정한 시민 대상 실전형 훈련을 실시하고, 역사 내 방재 시스템을 자동화해야 한다.
  • 지하철 터널 위험도 공개 시스템 구축
    시민 누구나 내가 타는 열차가 지나는 경로의 위험도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지하철 안전지도 구축이 필요하다.

● 시민 차원

  • ‘지하철에서의 지진 행동요령’에 대한 교육 확대
    아직도 많은 시민이 지진 발생 시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몰리는 상황을 보인다.
    안전 캠페인을 통해 지하철 행동 수칙을 생활화해야 한다.
  • 스스로의 위치 인지와 대비
    역사 내 비상구 위치, 비상벨 사용법, 플랫폼 대피 경로 등을 평소에 숙지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의 길, 그 안에서의 안전

지하철은 도시의 심장을 관통하는 생명선이다. 그러나 그 생명선은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하 공간에 있으며, 사고 발생 시 가장 고립되기 쉬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지진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취약지대를 무너뜨린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재난 대응뿐만 아니라, 지하에서의 생존을 위한 상상력과 기술을 함께 갖춰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이 조용한 지하의 공간에 안전이라는 이름의 빛을 비추어야 할 때다.

다음 편에서는 ‘지진과 교량, 하늘길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를 주제로, 고가도로와 대형 교량이 지진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구조적 취약성과 내진 보강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