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

지진과 교량, 하늘길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아침양갱 2025. 7. 16. 10:15

지진과 교량

 

하늘길 위의 흔들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량 위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도시 곳곳을 잇는 고가도로와 고속도로의 교량, 강 위를 가로지르는 대교와 도심의 입체교차로는 이제 당연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오르고 있는 그 길이 지진과 마주하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안전할까?
차량과 사람, 그리고 도시의 연결망을 책임지고 있는 이 구조물들은 지진의 강한 흔들림에도 견딜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교량이라는 구조물이 지진에 얼마나 취약하거나, 혹은 강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더해 우리가 교량 위, 혹은 아래에 있을 때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본다.

 

교량은 왜 지진에 취약할까?

지진은 땅을 흔드는 힘이다. 문제는 그 힘이 단순히 수평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동은 수평과 수직 방향, 그리고 회전력을 동반해 복합적인 형태로 구조물에 전달된다. 이러한 진동이 교량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선 교량의 구조적 특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교량은 일반적으로 긴 경간을 가지며, 양 끝이나 중간에 위치한 교각(pier)과 교대(abutment)가 상판을 지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는 강성(rigidity)을 갖춘 부분과 유연한 부분이 공존한다. 그 결과 지진 발생 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교각의 붕괴: 지진에 의해 수평 하중이 가해지면, 교각이 휘거나 부러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 상판의 낙하: 상판이 교각 위에 얹혀 있는 방식일 경우, 지진으로 인해 상판이 교각에서 이탈해 낙하하는 위험이 있다.
  • 연결부 손상: 교량의 각 부위는 고정 연결되기도 하지만, 진동을 흡수하기 위해 유연한 연결장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장치가 파손되면 구조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량은 건물보다 지진 진동을 더 크게 받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진앙지와 가까운 위치에서 지반 진동의 증폭 현상이 발생하면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

 

실제 교량 붕괴 사례

● 미국 산프란시스코 – 롬 프리에타 지진 (1989년)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롬 프리에타 지진은 규모 6.9의 강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오클랜드 베이 브리지의 일부 구간이 붕괴되었고, 다층 고속도로 구조인 사이프러스 스트리트 바이어덕트(Cypress Viaduct)가 무너져 4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 교량들이 당시 내진 설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노후화로 인해 구조적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교량의 내진 성능을 강화하는 정책이 수립되었다.

● 일본 고베 대지진 (1995년)

고베 대지진은 교량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특히 한신 고속도로의 고가도로 일부가 아예 옆으로 쓰러진 모습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 지진으로 총 16개 교량이 붕괴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대부분의 피해는 지반의 액상화 현상교각의 전단 파괴로 인해 발생했다. 이후 일본은 전국의 교량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내진 보강 및 면진 설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 대만 지진 – 차이이 지진 (2016년)

대만 남부에서 발생한 차이이 지진은 비교적 규모가 작았지만, 지반 진동이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증폭되면서 교량 상판의 균열과 지지대 손상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지진 규모보다도 지반 조건과 진동 특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국 교량의 내진 설계 현실

한국은 비교적 최근까지 지진 위험이 낮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교량에 내진 설계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건축물과 더불어 교량에도 내진 설계 의무화가 도입되었고, 이후 점진적으로 기준이 강화되었다.

현재 한국의 교량 내진 성능은 내진등급 I~III로 구분되며, 교통량이 많은 주요 간선도로에 있는 교량이나 고속도로 교량은 대부분 내진등급 I~II에 해당하는 설계 기준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에 건설된 노후 교량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교량의 약 35%는 내진 성능이 미흡하거나 미적용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지방이나 소도시에 위치한 중소 규모 교량, 산업단지 연결 교량 등은 내진 보강 대상에서 우선순위가 낮아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교량 위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운전 중인 차량이 교량 위를 주행하고 있을 때 지진이 발생한다면, 아래와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즉시 정지하지 않는다: 교량 위에서 급정거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안전한 속도로 감속하여 다리를 건넌 후 정차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 중앙에 머무르지 않는다: 교량의 중앙은 낙하 위험이 가장 높은 구간이다. 지진 발생 시 빠르게 양 끝 방향으로 이동해 안전지대로 벗어나야 한다.
  • 하차하지 않는다: 흔들림이 있다고 해서 교량 위에서 차에서 내려서는 안 된다. 차량 내부는 충격을 흡수해주며, 구조적으로 더 안전할 수 있다.

지진으로 인해 교량이 붕괴될 가능성은 낮지만, 연결부 손상이나 낙하물, 상판 이탈 등 2차 피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교량 아래에 있을 때는?

교량 아래는 지진 발생 시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다. 상판이 흔들리면서 콘크리트 파편이 떨어질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전체 구조가 붕괴되기도 한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교량 하부에 있다면 다음을 유의해야 한다.

  • 즉시 벗어난다: 다리 아래에서 멀어져 개방된 공간으로 이동한다.
  • 머리를 보호한다: 낙하물에 대비해 가방이나 팔로 머리를 감싸고 빠르게 이동한다.
  • 지지 구조물 근처는 피한다: 교각 주변은 특히 붕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거리를 둔다.

 

미래의 교량은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을까?

최근 교량 설계에는 다양한 면진장치(Seismic Isolation Devices)와 댐퍼(Dampers)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지진 진동을 분산시켜 교량이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또한 스마트 센서 기반의 교량 모니터링 시스템도 보급되고 있다. 진동, 균열, 기울기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구조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점검과 보강, 그리고 시민의 인식 변화다. 지진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에 대비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교량 위 안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 지진 시 대피 요령 숙지: 운전 중일 때와 보행 중일 때 대처 방법은 다르다. 기본적인 대응 방안을 알고 있어야 한다.
  • 재난 경보 시스템 활용: 지진 조기경보를 수신할 수 있는 앱이나 문자 서비스를 활용해 빠르게 정보를 받아보는 습관을 들이자.
  • 교량 정보 확인: 자주 통행하는 교량이 오래된 구조물이라면, 내진 보강 여부를 확인하거나 시·군·구에 문의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늘길 위에서 지진을 마주한다면

지진은 단지 땅을 흔드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도시의 구조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하늘 위를 달리는 고가도로,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대교와 고속도로의 교량은 이 힘 앞에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붕괴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왔다. 문제는 그 교훈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선택의 문제다. 하늘길 위의 작은 흔들림을 방치할지, 그것을 대비할지,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다음 편에서는 *‘땅 위에 남은 지진의 상처, 단층선은 무엇을 말해줄까?’*를 주제로, 단층선이 남긴 흔적과 그 속에 담긴 지질학적 경고를 살펴봅니다. 과거의 지진은 땅 위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