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

지진 위험 지역은 어떻게 지정되고 관리되는가?

아침양갱 2025. 7. 7. 20:00

지진위험지역

 

보이지 않는 위험을 지도 위에 올리는 일

 

지진은 갑작스럽고 예측이 어려운 자연재해지만, 그 피해는 전적으로 무작위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를 놓고 보면, 특정 지역에서 지진이 자주 반복되며 그 강도 역시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을 바탕으로 인간은 지진 위험을 ‘지리적 위험도’로 시각화하고, 그 위에 도시를 세우거나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에 지진이 많았던 곳'이라고 해서 무작정 위험 지역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지진 위험 지역을 지정하는 일은 과학과 정책이 결합된 정교한 작업이며, 각국은 이를 토대로 건축 기준을 설정하고, 방재 계획을 수립하고, 재난 대응 체계를 운영한다.

이번 글에서는 지진 위험 지역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지정되고 행정적으로 관리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지진 위험도란 무엇인가?

 

먼저 ‘지진 위험 지역’ 또는 ‘지진 위험도’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진 위험도는 한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과 그로 인한 피해 수준을 통계적으로 평가한 수치다.

지진 위험도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산정된다.

  1. 지진 발생 가능성 (Seismic hazard)
    → 특정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이 얼마나 자주 발생할 수 있는지
  2. 노출도 (Exposure)
    → 해당 지역에 얼마나 많은 인구와 자산(건물, 시설 등)이 분포되어 있는지
  3. 취약성 (Vulnerability)
    → 해당 지역의 구조물이 지진에 얼마나 약한지, 구조적 내진 성능 등

즉, 단순히 “지진이 자주 발생하니까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그 지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개념이 바로 지진 위험도이다.

 

지진 위험 지역 지정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각 국가는 자국 내 지진 위험 지역을 식별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은 순차적으로 반복되며, 축적되는 지진 데이터와 지질 조사 결과에 따라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지질 구조 및 단층 분석

  • 먼저 해당 지역의 지질 구조를 파악한다.
  • 특히 활단층(active fault)의 위치, 길이, 최근 활동 시점, 과거 지진 기록 등을 조사한다.
  • 이를 통해 지진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1차적으로 선별한다.

지진 발생 이력 데이터 수집

  • 수십 년 또는 수백 년간의 지진 발생 기록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지진 주기, 최대 규모 등을 분석한다.
  • 현대 지진계 측정 이전의 역사 지진은 고문헌, 지질학적 흔적을 통해 복원된다.

지진 지반 반응 분석

  •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지반 종류에 따라 피해가 다르다.
  • 연약 지반은 진동을 증폭시키므로 위험도가 높다.
  • 따라서 각 지역의 지반 특성을 분석해 지진 진동에 대한 반응 모델링을 수행한다.

확률론적 위험도 평가 (PSHA)

  • 일정 시간 내 특정 지역에서 특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한다.
  • 이를 통해 지진 재현주기(예: 475년 주기, 2% 확률의 지진)에 따른 위험도 지도를 제작한다.

지진 위험도 지도 작성

  • 위 데이터를 종합해 지진위험도지도(Seismic Hazard Map)를 만든다.
  • 이는 건축물 설계 기준, 도시계획, 인프라 배치, 보험료 책정 등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각국의 지진 위험 지역 관리 체계는 어떻게 다를까?

 

지진 위험도 관리는 국가마다 그 체계와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이 분야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며 과학적 기반의 정책 결정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철저한 단층 조사와 지역별 건축 기준 차등 적용

  • 일본은 전국 단층 지도를 구축하고 있으며, 활단층 인근 지역은 별도 내진 기준을 적용한다.
  • 각 지자체는 독자적인 지진 피해 예상 지도를 수립하고, 주택지구나 산업단지의 입지 제한을 두기도 한다.
  • 고층 건물 및 필수 기반 시설(병원, 발전소, 고속철 등)은 법적으로 최고 수준의 내진 성능을 갖추도록 규정되어 있다.

미국: USGS(미국지질조사국)의 체계적 위험도 평가

  • 미국은 지진 다발 지역(캘리포니아, 알래스카 등)을 중심으로 확률론적 위험도를 평가하여 매 5년마다 지진위험도 지도를 갱신한다.
  • 해당 지도는 건축물 내진 설계 시 반드시 반영되며, 보험료 책정, 지역 개발 허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 미국은 또한 ShakeAlert 시스템을 통해 조기경보와 대중 알림 체계를 운영한다.

유럽: EU 표준화와 국가별 지역화

  • 유럽은 유로코드(Eurocode 8)라는 건축물 내진 설계 기준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각국이 자국 지진위험도 지도를 작성한다.
  •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 지진 다발 국가는 위험 지역의 건축물에 대해 사전 강화 및 보강 사업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지진 위험 지역을 관리하고 있나?

 

한국도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 이후, 지진 위험 지역 관리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주요 정책 변화

  1. 지진위험지도(2019, 2021년판) 제작 및 공개
    → 전국을 1km 격자로 나눈 위험도 분포도
    → 지진 재현주기 475년 기준, 50년 내 10% 확률의 진도 예측
  2. 지진 재해 취약 지역 지정
    → 특정 지자체 단위로, 진동 증폭 가능성과 단층 밀집도를 고려해 분류
    → 예: 경북 포항, 경주, 울산 일부 지역 등
  3. 공공시설물 내진 설계 의무화
    → 학교, 병원, 소방서, 철도역, 댐 등은 내진 성능 확보 의무 대상
    → 2020년 이후 건축물은 대부분 내진설계 반영 의무화
  4. 지진조기경보 및 지진감지관측소 확대
    → 전국 350여 곳 이상에 감지 센서 설치
    → 2024년부터 국민 재난 앱 ‘안전디딤돌’을 통한 실시간 알림 시행

하지만 민간 건축물의 내진 보강률은 아직 낮은 편이며, 도시 확장 지역에서는 단층대 고려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 활단층 정보의 비공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정보의 투명성과 행정의 실효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 있다.

 

지진 위험도 관리는 왜 중요한가?

 

지진이 일어날지 여부를 100%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 그리고 일어났을 때 피해가 클 지역은 충분히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 지역을 사전에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단순히 통계나 행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안전 자산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며, 수백만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문제다.

  • 고층 건물의 허용 여부
  • 도시 고밀화 지역의 제한
  • 원자력 발전소의 입지 선정
  • 교량, 터널, 지하철의 내진 성능 확보
  • 학교, 병원, 공공청사의 내진 보강 여부

이 모든 것이 ‘어디가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지진 위험 지역을 과학적으로 구분하고 정책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재난을 막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결론: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읽는 능력

 

지진은 흔히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으로 불린다. 하지만 지진이 주는 피해의 크기와 양상은 인간이 얼마나 대비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진 위험 지역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위에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정책 결정의 문제다.

지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위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한다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지진 앞에서도 훨씬 더 단단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지진은 준비한 만큼만 피해를 준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그마와 지진,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까?”를 주제로, 지각 아래에서 움직이는 뜨거운 마그마가 어떻게 지진을 유발하는지, 화산지진과 단층지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두 자연현상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