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

지진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응력과 변형의 과학

아침양갱 2025. 8. 6. 23:08

지진의 시작

 

지진은 결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지진은 우리에게 순식간에 찾아오는 재난처럼 보인다. 뉴스 속의 지진 속보를 보면 몇 초 만에 모든 것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진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보면 지진은 결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그 시작은 수십 년,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동안 조용히 진행되는 응력 축적에서 비롯된다. 응력(stress)이란 단순히 힘이 작용하는 정도를 뜻한다. 지구의 표면을 이루는 지각은 거대한 암석판(tectonic plate)들이 서로 맞물리거나 밀고 당기거나 비켜가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판의 경계나 내부에 응력이 쌓이고, 이 응력이 한계에 이르면 지각이 부서지고 미끄러지면서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방출된다. 이 순간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지진’이다.

 

응력 축적의 무대 – 지각과 단층

 

지진의 무대는 지각의 특정한 구조물인 단층(fault)이다. 단층은 과거 지각이 움직이며 생긴 균열인데, 지진의 대부분은 이 단층을 따라 발생한다. 판이 움직이면 단층 양쪽의 암석 블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려 한다. 하지만 마찰력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그 사이에 응력이 점점 축적된다. 마치 손으로 무거운 상자를 미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아무리 힘을 줘도 처음엔 상자가 움직이지 않지만, 마찰을 이길 만큼 힘이 쌓이면 갑자기 미끄러진다. 지각도 이와 비슷하다. 응력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암석이 갑자기 움직이며 강한 진동을 만든다.

 

암석 변형의 세 단계

 

지진이 발생하기 전, 암석은 변형 과정을 거친다. 이 변형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탄성 변형(elastic deformation)

  • 힘을 받으면 모양이 변하지만, 힘이 사라지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 예: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길이로 돌아오는 것.

소성 변형(plastic deformation)

  • 힘이 사라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 예: 철사를 구부리면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는 현상.

파괴(fracture)

  • 암석의 강도를 초과한 힘이 작용하면 깨지거나 단층을 따라 미끄러진다.
  • 이 순간 방출되는 에너지가 지진파로 변한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은 ‘탄성 변형 → 소성 변형 → 파괴’라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즉, 지진은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찾아오는 폭발적인 에너지 해방이다.

 

판 경계 유형과 지진 발생 방식

 

판의 움직임은 크게 세 가지 경계 유형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경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력을 쌓고 방출한다.

 

수렴 경계(convergent boundary)

  • 두 판이 서로 부딪히는 곳.
  • 예: 일본 동북부, 칠레 해안.
  • 강력한 압축 응력이 쌓이며 규모 8 이상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쉽다.

발산 경계(divergent boundary)

  • 두 판이 서로 벌어지는 곳.
  • 예: 대서양 중앙 해령.
  •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며, 규모가 작은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보존 경계(transform boundary)

  • 두 판이 서로 비껴 지나가는 곳.
  • 예: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안드레아스 단층.
  • 전단 응력이 축적되며, 단층이 한 번 움직이면 큰 피해를 주는 강진을 일으킨다.

 

왜 어떤 지역은 지진이 잦을까?

 

전 세계 지진의 약 80%는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발생한다. 이 지역은 태평양판과 여러 대륙판이 부딪히고 미끄러지는 복잡한 경계가 모여 있다. 반면 판 내부의 안정된 대륙 지각에서는 지진이 드물다. 하지만 드물게 발생하는 판 내부 지진은 응력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한 번에 방출되기 때문에 매우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1811~1812년 미국 뉴마드리드(New Madrid) 지진이 대표적이다.

 

응력 해소 방식의 차이

 

모든 응력이 지진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일부 단층에서는 응력이 천천히 해소되어 비지진성 변위(aseismic creep)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 경우 큰 진동 없이도 단층이 움직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히 단층이 오랫동안 잠겨 있었던 경우에는 응력이 한 번에 방출되며 강력한 지진을 만든다.

 

응력 분석을 통한 지진 위험 평가

 

현대 지진학은 응력을 직접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지각 변형을 정밀하게 측정해 간접적으로 평가한다.

  • GPS: 연간 수 밀리미터 단위의 판 이동 측정.
  • 위성 간섭측량(InSAR): 지표 높이 변화 분석.
  • 미소지진 관측: 작은 지진의 분포와 패턴을 통해 응력 집중 지역 파악.

이러한 데이터는 지진 위험 지도를 작성하고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응력과 변형 연구의 실제 사례

 

일본 도호쿠 대지진(2011년, 규모 9.0)은 태평양판이 일본 해구 아래로 섭입하면서 수십 년간 응력이 축적된 끝에 발생했다.
지진 직전 GPS 자료에서는 일본 동북부 해안이 해구 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변형이 관측되었으며, 이는 응력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칠레 대지진(1960년, 규모 9.5)도 비슷하다. 남아메리카판과 나스카판의 충돌로 오랜 응력 축적이 있었고,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폭발했다.

 

지진은 예측보다 이해가 먼저

 

지진은 예측이 어렵지만, 발생 원리를 이해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응력과 변형의 과학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재난 대비의 핵심 지식이다. 과거의 응력 축적 패턴을 연구하고, 현재의 변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미래의 재난을 막는 첫걸음이다.

다음 편에서는 “지진파의 종류와 이동 원리, 땅속에서 일어나는 파동의 여행”을 다룬다.
지진이 발생한 후 땅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의 여정을 따라가며, P파, S파, 표면파가 어떻게 서로 다른 속도와 특성으로 지구를 흔드는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