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예측할 수 있을까? 가능성과 한계의 과학
지진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가장 두려워한 자연재해 중 하나다. 지표면을 순식간에 뒤흔들며 도시를 붕괴시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이 무서운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항상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또 지진이 일어날까?"
현대 과학은 수많은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유독 지진은 예측이 매우 어렵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일까? 과연 언젠가는 가능할까? 이 글에서는 지진 예측의 개념과 시도들, 기술적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미래의 방향성까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예측'이란 무엇인가? 지진 예측의 정의부터 시작하자
우선 ‘지진 예측’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예측’이라고 하면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어느 정도 크기의 지진이 발생할지를 정확히 맞추는 것을 떠올린다. 이를 ‘정밀 예측’이라고 부르며, 이상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포함해야 한다.
- 언제: 연도, 월, 일, 심지어 시간까지
- 어디서: 정확한 지점 혹은 지역
- 얼마나: 규모(Magnitude)나 진도(Intensity)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예측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이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예보(forecasting)’나 ‘위험도 평가(hazard assessment)’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 지진 예보(Forecasting): 특정 기간(예: 향후 30년) 안에 특정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제공
- 지진 위험도 평가: 특정 지역의 지진 발생 가능성과 그로 인한 피해 위험을 지도나 수치로 표현
결국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가능한 수준의 ‘예측’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확률적 예보’에 가깝다.
고대의 예측 시도에서 현대 과학까지
지진 예측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구리의 행동 변화나 우물물의 이상 징후를 통해 지진을 미리 감지하려 했고, 132년 장형(張衡)이 만든 ‘지진계’는 최초의 기계적 지진 감지 장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과학적 데이터나 구조적 모델 없이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 시도였다.
20세기 들어 지진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측 연구도 활발해졌다. 특히 미국, 일본, 중국에서는 정밀 예측 시스템 개발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신호를 감지하려 했다.
- 전조 현상: 지진 전에 나타나는 특이한 자연현상 (이상 전류, 지하수 수위 변화, 동물 행동 등)
- 지진 공백 이론: 한 지역에 일정 시간 이상 지진이 없었다면, 조만간 큰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이론
- 단층의 응력 축적: 지각판의 움직임으로 단층에 에너지가 쌓이는 과정을 추적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예외적인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예측으로서의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왜 지진 예측은 이렇게 어려울까?
지진 예측이 다른 자연재해보다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지진이 지구 내부, 그것도 수십 km 깊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 내부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거나 정밀하게 추적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지진은 대부분 비선형적 시스템에서 발생한다. 비선형성이란 작은 변화가 예기치 않게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마치 ‘나비 효과’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단층의 미세한 균열 하나가 전체 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계산하기 어렵다.
더구나 각 지역의 지질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동일한 지진 규모라고 해도 어느 지역에서는 큰 피해를, 어느 곳에서는 거의 피해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복잡성은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예측이 아닌 조기 경보로 방향을 튼 이유
1990년대 이후, 많은 지진학자들은 정밀한 예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Earthquake Early Warning System)’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진 발생 후, 지진파가 도달하기 전 수 초~수십 초 동안이라도 경고를 보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EEW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본격 가동되었으며, 감지 센서가 지진의 P파(빠르게 도달하는 초기에너지)를 감지한 즉시, 보다 파괴적인 S파가 도달하기 전에 방송, 스마트폰, 열차 등에 자동 경보를 보낸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고와 피해가 예방되었다.
비록 ‘예측’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보 시스템’은 현실적인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다
최근 들어 AI와 머신러닝이 지진 예측 분야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이 인간이 세운 모델에 기반했다면, AI는 수백만 건의 지진파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스스로 인식한다.
202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AI 기반 시스템이 기존 모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지진파를 식별하고, 규모를 계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본과 대만, 칠레 등도 AI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경보 시스템을 시험 운영 중이다.
AI는 특히 미세지진(small tremor) 패턴 분석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런 미세진동이 대형 지진의 전조일 수 있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만, 데이터의 질과 해석 기준, 알고리즘의 편향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음 주 화요일, 서울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할 것입니다"라는 식의 예측이 가능해질까? 대답은 '아직은 불가능하다'이다.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시기는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이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의 정밀도를 지나치게 기대하기보다, 예보와 경보의 정확도를 높이고, 위험 지역에 대한 대비를 체계화하며, 건축 구조물의 내진 성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결국 인류가 지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력과 회복력의 강화일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서는 “지진이 만든 인공 호수, 자연의 이변인가 축복인가?”라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거대한 지진 후에 형성된 천연 댐과 호수의 사례를 통해, 지진이 단지 파괴만을 남기는 것이 아닌 자연환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