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단층 위의 도시들, 지금 이 순간도 움직이고 있다
도시가 움직인다는 말은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마치 콘크리트로 고정된 도심이 하루아침에 살아 움직일 리 없다는 확신이 우리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 아래에서는 지금도 지각판이 움직이고, 단층은 긴장을 높이고 있다. 특히 ‘활단층’ 위에 놓인 도시라면 이야기는 훨씬 더 다급하다. 과거에 지진을 일으킨 단층은 다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위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재난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뜻한다. 이번 글에서는 활단층의 개념과 그 위에 세워진 도시들이 지닌 지진 리스크,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활단층”이란 무엇인가?
단층은 지구 내부 힘에 의해 지각이 끊기거나 밀려 생긴 균열 구조를 말한다. 이 단층 중에서도 최근 1만 년 이내에 활동한 흔적이 있거나, 미래에도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활단층(active fault)’이라 부른다. 지질학자들은 이 기준을 바탕으로 활단층을 구분하며, 과거의 지진 기록, 단층 주변 지형 변화, 단층면의 누적 변위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분석한다.
활단층이란 단지 과거에 한 번 움직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도 에너지를 축적 중이며,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의 언어다. 이러한 단층은 보통 판 경계 지역이나 지각의 응력이 높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위에 위치한 도시는 구조적으로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활단층 위의 대도시들: 위험한 공존
오늘날 수많은 대도시들이 활단층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단층대는 지형적으로 평탄하거나, 하천이 발달한 곡저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농업과 교통, 무역에 유리한 거주지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은 결국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한 채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인구 밀집과 고층 건물 확산이 지진 위험을 가중시킨 셈이다.
예: 미국 샌안드레아스 단층 위의 로스앤젤레스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맞닿는 지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활단층 중 하나다. 이 단층을 따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가 자리 잡고 있으며, 과거 수차례 강진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 대해 “The Big One”이라는 별칭의 대지진이 수십 년 안에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 일본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고베
일본 역시 수많은 도시가 활단층 위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당시 진앙은 고베를 가로지르던 ‘노지마 단층’이었고, 약 6,400명의 사망자와 도시의 절반이 넘는 피해를 초래했다. 이는 활단층 위 도시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예: 대한민국의 수도권과 양산단층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양산단층을 비롯한 수많은 활성단층이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으며, 수도권 인근에도 그 흔적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 대규모 피해는 없었지만,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은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사례다. 특히 포항 지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활단층에 의한 인공 지진’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경고: 도시는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가?
문제는 이렇다. 도시가 활단층 위에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위험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심의 건축물 상당수는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았거나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진 발생 시 상하수도, 전력망, 교통망, 통신망이 한꺼번에 마비되며, 혼란은 재난이 아니라 ‘복합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중소형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지역에서는 ‘지진 무풍지대’라는 인식이 오히려 경각심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층은 언제든 깨어날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정적이고 아무 변화도 없지만, 단 한 번의 강진이 도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활단층 위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대비와 교육, 인프라 개선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달려 있다. 먼저, 내진 설계 기준을 전면 재정비하고 기존 건물에 대한 보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공공시설, 병원, 학교 등 다중이용시설의 안전 점검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둘째, 실시간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지진 발생 후 수초에서 수십 초 내에 경보가 울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시민들도 그 경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교육받아야 한다.
셋째, 도시 계획 자체에 지진 리스크를 반영해야 한다. 활단층 인근 지역에 대한 개발은 보류하거나, 지하 인프라 설계에 지진 영향을 감안해 구조를 변경하는 등의 접근이 필요하다.
마무리하며: 움직이는 땅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지진이 어디서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예측 가능하다. 활단층 위의 도시는 어쩌면 이미 지진이라는 재난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숙명을 지닌 셈이다.
도시는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미리 대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여야 한다. 활단층은 잠들어 있지 않다. 그 아래에서 쌓이는 응력은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지표를 흔들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준비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진의 위협을 지표 위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는 “지하 단층지도, 보이지 않는 위험을 시각화하다” 지하에 숨겨진 단층 구조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과학적 대비가 가능한지를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