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기억을 담은 도시들, 재난은 어떻게 기록되는가?
지진은 순식간에 도시를 무너뜨리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사람들 사이에 남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단지 물리적인 붕괴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어떤 도시는 폐허 위에 다시 일어서며, 그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기념비, 추모공원, 교육 공간,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지진은 도시의 ‘기억’으로 살아남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지진을 겪은 도시들이 어떻게 그 재난의 순간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우리가 오늘날 고베, 센다이, 리스본, 샌프란시스코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자연재해의 장소로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그 아픔을 ‘기억하는 방식’에 있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기억과 복원의 이중 궤적: 고베 대지진의 사례
1995년 일본 효고현 남부를 강타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고베시를 중심으로 약 6,000명에 이르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당시 고베는 무너진 철도와 도로, 불타는 항만, 붕괴된 고층 아파트들로 인해 ‘도시 기능의 마비’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고베시는 단순한 복구를 넘어, 도시의 재건 과정에 ‘기억을 남기는 철학’을 담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신·아와지 대지진 기념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서, 지진 당시의 충격과 그 후의 재건 이야기를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실제 붕괴된 주택의 잔해와 피해자 인터뷰, 복구 작업에 참여한 시민의 목소리 등을 통해 지진이 단지 숫자나 피해액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고베 포트아일랜드에는 지진 당시 파손된 부두 일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그 자리를 산책하면서, 자연재해가 남긴 물리적 흔적과 도시가 복원한 정신적 상징을 동시에 체험하게 됩니다.
기억 위에 다시 선 도시: 동일본 대지진과 센다이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었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동반하며 세계적으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진앙지는 미야기현 앞바다였지만, 그 피해의 중심은 해안도시인 센다이였습니다.
센다이시는 복구 과정에서 ‘기억’과 ‘미래’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주력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3.11 기억의 유산(Memories of 3.11)’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보존하고, 피해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센다이시에는 지진 당시 1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닥쳤던 아라하마 초등학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쓰나미로부터 학생들이 살아남았던 경로, 교사들의 대피 판단, 그리고 피해 지역의 변화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단순한 유적을 넘어 ‘살아있는 방재 교육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센다이(後仙台) 마을은 재해 전후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과 증언을 지속적으로 아카이빙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도 해당 자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센다이는 재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정착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유럽의 전환점이 된 지진: 리스본 대지진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을 덮친 대지진은 유럽 사회에 엄청난 철학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규모는 약 8.5에서 9.0으로 추정되며,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지진 이후 발생한 해일과 화재로 인한 2차 피해가 더 컸습니다.
리스본은 물리적인 복구 외에도 철학적·문화적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계몽주의 시기에 발생한 이 재난은 “신의 뜻인가, 자연현상인가”에 대한 질문을 촉발했고, 지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도시 복구는 당시 총리 마르퀴스 드 폼발(Marquis de Pombal)이 주도했습니다. 그는 지진 직후 “이제 시체를 매장하고 도시를 재건하라”는 말로 빠른 복구를 명령했으며, 리스본의 시가지 구조를 보다 정돈되고 현대적인 방진 도시로 재구성했습니다. 오늘날 리스본 도심인 ‘바익사(Baixa)’ 지역은 그 당시 재건된 도시 계획의 결과입니다.
또한 리스본 시내에는 당시 지진으로 파괴된 ‘카르무 수도원(Carmo Convent)’이 일부러 복원되지 않고 폐허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리스본 시민들이 그 사건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기억의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상징, 샌프란시스코의 1906년 대지진
1906년,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대지진은 당시 도시의 80% 이상을 불태웠고, 약 3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지진은 도시 재해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며, 이후의 방재 정책과 도시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진 이후 전면적인 도시계획 개편에 착수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특히 다운타운 중심가 일부 지역은 ‘방진건축’의 개념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4월 18일, 지진 발생일에 맞춰 ‘1906년 대지진 추모행사’를 개최합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지진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방재 훈련을 겸한 이벤트가 열립니다.
또한, 도시 곳곳에는 1906년 지진 전후 사진이 새겨진 동판이나 벽화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든 도시의 ‘지진 기억’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도시가 과거의 재해를 단순히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억의 도시로 나아가고자 함을 보여줍니다.
지진의 기억은 ‘사라짐’이 아닌 ‘새로운 축적’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잊지 않는 것’입니다. 지진은 도시를 무너뜨리지만, 그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재해의 교훈도 함께 잊히게 됩니다. 그래서 재난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지 피해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과 방재 문화의 밑거름이 되는 행위입니다.
지진을 경험한 도시들은 물리적인 복구와 함께, 그 재해를 기억하는 장소, 이야기, 이미지, 의식을 함께 구성해 나갑니다. 그렇게 할 때, 재난은 파괴가 아닌 ‘전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지만, 그 이후의 기억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지진은 어쩌면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고베와 센다이, 리스본, 샌프란시스코는 그 질문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답변을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도시의 골목에도, 어쩌면 오래전의 흔들림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기억이 당신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땅의 역사, 지진은 지형을 어떻게 다시 쓰는가?’를 주제로, 단층대와 지각판 경계에서 지형 변화가 어떻게 축적되어왔는지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