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왜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닐까?
과거에는 한국 사회 전반에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다”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처럼 판 경계에 위치한 국가들과 달리 지진으로 인한 대형 피해를 겪은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믿음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최근 10~20년 사이 한반도에서도 지진의 빈도와 규모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지진에 대한 경각심과 내진 대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지’, 지질학적 원인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 어디서 비롯됐을까?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지진대인 환태평양 조산대(Pacific Ring of Fire)에서 떨어진 지역입니다.
이 조산대는 전 세계 지진의 약 80% 이상이 발생하는 활발한 지각판 경계로, 일본은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면,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어 지각판 경계에서 발생하는 큰 지진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20세기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지진의 기록이 드물었던 것도 이 같은 인식을 강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질학적 오해와 과학적 진보의 한계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습니다.
한반도에도 존재하는 ‘활성 단층대’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는 다수의 활성단층(active fault)이 존재하며 이들 중 일부는 과거 지진을 반복적으로 발생시킨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활성단층 예시
- 양산단층대 : 경주,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됨
- 울진단층대, 안동단층대, 인제단층대 등
- 이 외에도 경북, 충북, 강원, 전북 등지에 알려지지 않은 단층들이 분포하고 있음
지질학자들은 한반도 지각 내부에도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으며, 이는 일정 주기 또는 조건이 맞을 때 지진으로 방출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제 발생한 중규모 지진 사례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최근 몇 년간 실제로 발생한 지진의 기록입니다.
▪ 2016년 경주 지진 (규모 5.8)
- 한반도에서 계기 관측 이후 최대 규모
- 진도 6 수준의 강한 흔들림
- 건물 균열, 문화재 훼손, 23명 부상
▪ 2017년 포항 지진 (규모 5.4)
- 도심 중심부 가까이 발생
- 학교, 아파트, 상가 대규모 피해
- 지진 이후 수개월간 여진 지속, 시민 대피생활
▪ 2023~2024년 울진, 동해안 지진
- 규모 4.0~4.5의 중규모 지진이 잇따라 발생
- 원전 주변 지진 발생으로 불안감 증대
- 기상청, 행정안전부 등 관계 기관 경보체계 강화
이러한 사례들은 단층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규모는 작아도 도심지와 가까울 경우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반도 지진의 특징: 얕고 도심에 가깝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일본이나 칠레와 같은 해저 지진에 비해 진원 깊이가 얕고, 도심지에 가까운 위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진원 깊이 평균 10~15km 수준
- 내륙형 단층 지진은 짧은 시간 내에 강한 진동을 발생시킴
- 지반 조건에 따라 진동이 증폭되며 건물 피해 가능성 증가
예를 들어 포항 지진 당시 피해가 컸던 이유는 규모는 작지만 진원지가 얕고, 도시 중심부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한반도형 지진이 일본형 지진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내진 설계와 건축물의 취약성
한반도는 비교적 최근까지 지진 대비에 대한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상태입니다.
- 2005년 이전까지 지어진 건물의 내진율은 20% 이하
- 소규모 건물, 단독주택, 학교 등은 내진 성능 미비
- 지하철, 고가도로, 노후 공공시설도 취약한 상태
정부는 경주 지진 이후 내진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했지만, 이미 지어진 기존 건물의 보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예산도 막대하게 듭니다. 따라서 지진 발생 시 실제 피해가 클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반도 주변 판구조와 응력 누적
지질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하지만 동쪽으로는 일본 해구, 서쪽으로는 중국 내륙판과 경계를 이루며 지각판 사이에서 응력(stress)이 천천히 누적되는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 일본 해구에서는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
- 이때 발생하는 지진 에너지의 일부가 한반도 내부에도 전달
- 단층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응력을 축적하다가 한순간에 파열
즉, 한반도는 ‘주요 판 경계’는 아니지만, 지진 발생 메커니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지질 구조가 아니며, 이는 최근의 지진 빈도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지하개발과 지진 연관성?
최근에는 기후변화, 지하개발(지열발전, 터널 굴착 등)과 지진 발생 간의 연관성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소 인근에서 발생했으며, 국책조사단은 해당 지진이 인위적 지진(촉발지진, induced earthquake)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대규모 지하 활동 역시 단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무리하며
이제는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이 과거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지질 연구가 확대되면서 우리는 한반도 역시 중규모 지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지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핵심은 지진이 올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언제든 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 우리 지역의 단층 구조를 이해하고
- 건물의 내진 상태를 확인하며
- 지진 행동요령을 습관처럼 익히고
- 평소 비상 대피경로와 대피소 위치를 기억해두는 것
이제 우리는 ‘지진 대비’를 선택이 아닌 생존의 기본조건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동네 지진 위험도 확인하는 법, 단층은 어떻게 알아보나?”를 주제로 개인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지진 위험도를 확인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드립니다.